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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육아휴직

육아휴직에 대한 오해

 

맞벌이를 하며 3명의 아이를 키우는 우리부부는 아내가 육아휴직을 2년이나 썻음에도 불구하고 육아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서 결국 나까지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생각자체부터 진짜로 휴직에 들어오는 결정을 하기까지는 적잖이 심각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 고민의 내용은 주로 회사생활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인사고과, 근무지, 승진, 급여, 생활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끊이지 않는 심각한 고민거리들이 쏟아져 나왔고 어느정도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서 주변의 지인들과 상의를 할 때에도 찬성하는 사람들보다는 만류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심지어 우리집 상황과 아이들에 대해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아내조차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 고민의 양이나 심각성은 충분히 짐작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 최종적으로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회사에서 분명 불이익이 있을테지만 어찌되었던 그 부분은 나와 아내가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짓고 나자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자 나는 남는 시간에 그 동안 하고싶었지만 여러여건상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살짝 기대감마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나의 오만과 자만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휴직에 들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집에서 주부로써, 아이들의 부모로써 살아가는 것은 내 생각보다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주로 하는 일은 누구나 알고 있는 가사일과 육아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가사일과 육아일을 전담하는 사람은 전업주부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을 사는데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암묵적 시기와 질투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던 것 같다. 아니 사회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워낙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보냈던 터라, 먹고 살기위해 돈을 벌어야 되는 것은 하기싫어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나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학때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나의 경우는 짧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다. 때문에 집에서 편하게 쉬면서 나라와 회사에서 주는 보조금을 받으며 큰 걱정없이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것은 정말 쉬운일이라는 착각을 하고야 말았다. 나름 10년간의 자취생활을 훌륭히 해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청소와 빨래, 식사 준비를 하는 것쯤은 정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진심으로 물리고 싶다. 지난 6개월간 아이를 돌보며 집안살림을 도 맡아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아닐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들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내가 이렇게 육아와 가사에 대해 커다란 착각을 했던 것은 분명 나의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사회와 환경이 만들어내는 부분도 적지는 않은것 같아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그 중에서 오늘은 첫번째인 육아휴직 이라는 명칭을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육아휴직이라는 단어를 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회사일을 쉬고 집에서 육아에 집중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단어이기에 사실 그 사용은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 단어에는 심각한 오류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보통 중요한 것을 뒷부분에 말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 라는 단어로 설명해 보면 앞에 놓여져 있는 김치라는 단어보다는 냉장고라는 단어가 그 단어의 뜻을 정의해주고 있다. 분명 사람들은 김치냉장고를 들었을때 김치와 관련은 있지만 그것은 냉장고야. 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하게 되고, 그 것은 바른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육아휴직에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육아가 아닌 휴직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즉, 육아에 집중하는 삶이 아닌 휴직 단순히 회사일을 쉰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크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나도 단순히 휴직이라는 단어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었고, 쉰다는 의미, 그동안 회사다니며 돈버느라 고생했으니 쉬기도 해야되 라는 생각을 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회사입장에서만 생각한 너무 가혹한 단어였다. 육아휴직을 하고 난 후의 내 삶은 사실 회사 다닐때보다 훨씬 더 힘든것 같다. 육아와 가사노동은 나에게 주는 만족도는 크지만 노력에 대한 댓가와 그 노력의 크기가 너무나도 큰 것이다. 그 부분을 인지하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데만 약 2개월이 걸린 것 같다.

 

휴직이라는 단어에 집중되어 집안에서 문제만 일으키다가 결국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집안의 모든 업무를 도 맡아 처리하고 나니 육아휴직보다는 가사 및 육아 전환자 라는 단어가 훨씬 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휴직자는 쉬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쉬지 못하고 있다. 집에만 있어서 건강이 훨씬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악화되고 있고 그 보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오는 공포가 나를 점점 옥죄어 오고 있다.

 

주부들이 집에서 흔희 겪는 스트레스와 우울증 역시 나도 똑같이 겪고 있는 것이다. 모든 주부들이 그러했듯 나도 슬기롭게 해쳐나가겠지만 나는 지금 인류의 역사속에서 고통받아왔던 여자의 아픔을 순수하게 체험하고 공감하게 되고 말았다.

 

그동안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이유없이 행했던 폭력중에 하나가 나는 나가서 쐬가 빠지게 돈을 벌어오는데, 당신은 집구석에 편히 앉아서 놀고 먹으며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해? 라고 외치던 수많은 선배 남성들에게 돌을 던지는 바이다. 그렇다고 남자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지는 않는다. 세상속에서 돈을 번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직접적으로 느끼고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가 보살펴주고 좀더 알아서 이해해주며 살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뿐이다. 남자들이 말해왔던 집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사실 여자들의 대화가 끊임없이 계속나오는 이유도 집안일을 해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 나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만날때면 전화통화로 1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조금씩 여자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남자가 되어가고 있다.

 

때문에 나는 육아휴직이라는 순수하게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산되어진 이 단어의 사용에 대해 합리적 의구심을 갖는다. 그리고 앞으로 사회의 합리적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가사/육아노동 전환자 라던가 하는 식의 새로운 형태의 단어로써 그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긴 그러면 남자들이 더욱 육아휴직을 안쓰려나?